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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7)


by 지원

영화의 주인공 앤드리아는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비서자리를 얻고, 타고난 명석함과 성실함, 그리고 별 이유없이 도움을 주는 친절한 조력자들과 억세게 좋은 운 덕택에 그다지 원했던 직업이 아니었음에도 승승장구하고 바로 윗 상사를 제칠만큼 성장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는 디자이너들의 이름과 수트들, 화려한 패션계의 일상이 끼어들지만, 실상 영화는 패션계 자체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할애하지 않는다. 어떤 직장 초년생들에게도 대입 가능한 '취업 분투기'이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자신의 악마 같은 상사를 떠올리며 미란다와 비교할 것이며,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앤드리아 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요구들을 해내야 했던 경험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지미 추 구두에 발을 집어넣는 순간, 너는 이미 악마에게 영혼을 판' 앤드리아가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어'라고 변명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 결국 '런웨이'를 나와 친구들에게 돌아가는 결말에 다행스러워 하거나, 저널리스트의 길은 패션잡지 에디터의 길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철 없음에 혀를 찰 것이다. 신출내기 젊은 직장 여성과 까다로운 여성 상사의 대립과 교감, 그리고 직장에서 성공할수록 외로워지는 여성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 영화를 '워킹걸'류의 영화로 읽는 것은 물론 타당성이 있으며, 게다가 이 영화에 대해 '된장녀 교과서'운운하는 인터넷의 짜증나는 비아냥들이나 거기에 동조하는 몇몇 언론사의 어처구니 없는 리뷰들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필사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는 패션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여성의) 직장에서의 성공과 갈등'으로 읽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이른바 '칙릿(chick-lit)'이 원작인 이른바 '베이브버스터(babebuster)' 영화이며,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칙릿'이나 '베이브버스터'는 그 말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경멸적인 느낌을 배체한 채(그럴 수 있다면), 기획될 때부터 감상에 있어 성별대립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며, 그러한 영화의 운명을 벗어나서 영화에 대해 애써 이야기하는 것은 영화의 핵심에 대한 어느정도의 회피라는 것이다. 영화가 패션계의 내부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에서 가장 강려한 장면은 매일 아침 앤드리아의 책상에 내던지는 미란다의 코트와 가방, 변신한 앤드리아의 출근길 의상들의 몽타주일 것이다. 가장 회전률이 높은 이미지들도 앤드리아의 이 출근길 의상들이다. 거의 모든 인터넷 의류 쇼핑몰에서 우리는 그 이미지들을 만날 수 있다. 앤드리아가 '런웨이'에 알맞게 화려한 변신을 하고 등장했을 때 극장에서는 여성관객들의 탄성이 터져나왔고(남성 관객이 아니라), 누군가는 미란다의 '명품' 가방과 코트가 책상에 내던져 질 때 숨이 턱턱 막혔다고 한다. 따라서 이른바 '된장녀'류의 논쟁을 극구 피하고자, 영화에 대해 한껏 '워킹걸'류의 논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와서 미란다의 실제 모델인 안나 윈투어를 검색하고 그녀의 스타일을 체크하고 영화 속의 갖가지 의상과 소품들, 런웨이의 의상실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며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진품부터 a급 '이미', 그리고 급을 따질 수 없는 x마켓의 대량생산 카피제품들까지 능력에 맞추어 구비하게 된다. 사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여성 취업의 고난기로서가 아니라) '베이브버스터'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노력들을 비난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사실, 이러한 '칙릿'과 '베이브스터babebuster'의 성공 뒤에는 아무도 안정을 낙관할 수 없는 시대에 결혼'시장'과 고용'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물신주의와 무한경쟁(여성들에게는 주로 외모와 스타일을 무기로 싸워야 하는)에 자신을 맡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a급 이미테이션 제품들을 찾아내고, 그러한 정보들을 공유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무한경쟁의 시대에 즐길 수 있는 스스로의 쾌락 또한 존재할 것이고, 그것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는 이러한 부분을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하게 기억될 부분은 오프닝 시퀀스인데, 각기 다른 여성들이 출근 준비를 하며 몸단장을 하는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여성이 스타킹을 신고 긴 속눈썹을 마스카로 올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들은 남성의 시선에서 대상화해 재현될 때는 에로틱하게 재현되지만, 이 시퀀스에는 무척 화려한 패션소품들을 나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이 여성들을 비아냥 거리거나 희화화 할 의도도 없어 보인다. 매일매일 치뤄내야할 전쟁의 일상적인 준비를 아주 스타일리쉬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인구에 많이 회자되는 '똑같아 보이는 버클'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패션계에 대한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존중'을 보여준다.

그래도 여전히 시원하지는 않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 영화를 보고 이러쿵 저러쿵 해대는 것은 최근 2,30대 싱글여성들이 문화산업안에서 화두가 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가장 강력한 관객, 혹은 소비자로 대우 받은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그녀들의 소소한 일상들과 직장생활, 연애이야기는 tv부터 시작하여 스크린까지 장악해가고 있고, 비평담론들도 그녀들의 등장에 환호를 보낸다. 온스타일을 열풍에 모두 각을 세우고 물신만능주의에 허영으로 비판할 줄 알았는데, 주류담론들도 여성의 욕망들을 운운하며 옹호해준다. 이러한 옹호들을 결국 산업에 있어 이윤과 연관되기 때문이라는 말로 비판하기에도 석연치 않으며, 그 석연치 않음의 기저에는 분명 옹호해야 할 부분들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복잡한 지형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고 현명하게 자기 자리를 잡아 성공한 영화이다. 당분간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들이 이토록 깔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