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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아요! - 홍상수, 변화의 지점을 발견하다

by 한아

'해변의 여인'이라는 영화의 타이틀은 홍상수 영화의 제목치고는 너무 가볍다. 그동안의 제목들을 떠올려보자. '강원도의 힘(!)'이라거나 '생활의 발견(!)'이라거나 하는 강조가 들어가는 제목들, 혹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라든가 '극장전(前, 傳)'이라는 중의적이고 애매모호한 제목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단정적 명제. 혹은 "오!(오! 수정)"라는 감탄사. 홍상수 영화의 제목은 그 자체가 주는 함의가 (대개는 영화를 앞질러) 있었다. 그러나 '해변의 여인'은 어떠한가?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이 제목은 그 동안의 것들에 비해 너무 가볍거나 단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번에도 홍상수 영화의 제목이 영화를 앞질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홍상수 영화들 중 가장 가볍고 가장 단조롭고 직접적인 화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의 가벼움은 영화의 가벼움(그것은 깊이 없음과는 다르다!)의 전조이다. 여기에 더해 로메르식 제목을 따온 것처럼 로메르식 클로즈업과 카메라의 구도, 관계들이 참조된다. - 여기에는 로메르 이외에도 브뉘엘과 같은 유럽의 모더니스트 감독들이 함께 참조된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의 계보를 유럽식 모더니즘에서 찾기 이전에 <해변의 여인>을 포함한 그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참조는 홍상수 자신이다. 영화에는 영화를 만드는 남성 감독과 그들의 위선,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이라는 홍상수식 주제와 캐릭터가 고스란히 등장하며 남한의 공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 역시 전작들에 이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홍상수 영화를 말하기 위해선 홍상수의 캐릭터와 공간, 그리고 이것이 만들어내는 주제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해변의 여인>이 얼마큼 대단한 영화인가, 혹은 얼마만큼 대단한 영화언어를 구사하고 있냐의 문제보다 지금 이 영화 안에서 자신의 영화의 무엇이 참조되고 변형되고 있냐 하는 것이다.

< 해변의 여인>의 남자 주인공 김중래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제작자의 능글맞은 독촉에도 능글맞게 맞대응할 수 있고 여자와 같이 자기 위해 지지리 궁상을 떨어가며 여자를 유혹하는 법도 알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하룻밤의 정사를 위해 궁상을 떠는 못난 남자 캐릭터는 시종일관 등장해 왔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방식이 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다. 하룻밤 관계로 끝내고 싶은 남자가 여자를 떼어내기 위해 하는 설득도, 다시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도, 그리고 다른 여자와의 관계가 탄로날까봐 여자를 속이는 방법도 너무 뻔뻔하다 못해 실소를 자아낸다. 이 실소는 남자가 늘어놓는 온갖 미사어구와 솔직함을 가장한 위선, 자신의 욕망을 채워놓기 위해 늘어놓는 궤변-이 궤변은 이론으로 무장한 지식에 기대면서 지적 권위 자체를 무너뜨린다 ― 그리고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듯한) 여자를 보고 있을 때 극에 달한다.

그러나 영화의 중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홍상수 영화의 캐릭터와 시종일관한 주제는 여성 캐릭터의 태도와 시점의 이동을 통해 ‘홍상수 영화’를 답습하기를 멈춘다. 이 답습을 멈추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여성캐릭터이다. 그 동안 홍상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재현되는 방식은 언제나 문제적이었다. 여성캐릭터는 남성 캐릭터의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부차적으로 이용당해온 면이 있다. 그러기 위해 여성 캐릭터는 언제나 자신의 벗은 육체를 전시해야 했으며 남자를 민담의 뱀의 형상으로 만들거나(생활의 발견) 남자에게 불쾌한 내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뒤(극장전) 홀연히 내러티브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해변의 여인>에서는 (아마도 고현정이라는 배우의 네임밸류에 의해 가능해 진 것으로 보이는데) 불필요한 여성 육체의 전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시각적 불편함을 덜어준다. 그러나 홍상수의 변화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홍상수는 이제 더 이상 반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반복을 끊어내는 인물은 여주인공 문숙이다. 남성 캐릭터들은 그간의 그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관계의 고리 속에 갇혀버리는 바보로 남게 될 뿐이지 그 고리 자체를 끊어내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문숙은 분명하게 이 바보 같은 남자(들)에게 말한다. “난 반복 같은 건 싫어요.”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던 고리를 끊어내는 능동성은 여주인공에게 담보된다. 그것은 어쩌면 홍상수 영화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여주인공이 늘 남자 주인공에게 (화면 밖에서) 해왔던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여전히 그 관계의 사슬 안에 얽매여 있는 남자주인공들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보다 분명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이제 그의 영화에서 말해지지 못했던 이면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더 이상 반복은 싫어요."라는 말은 관계의 반복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홍상수 영화가 반복되는 주제와 반복적인 구조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에 대한 메타적 선언으로도 보인다. 이제 여주인공의 시점으로 막을 내린 영화가 다음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 다시 시작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홍상수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