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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길한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 김기덕의 <숨>


by 나나시

초기 무성영화는 감옥의 감방을 세트처럼 활용하여 촬영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는 세 면은 벽으로, 나머지 한 면은 감시자가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철창으로 이루어져 있는 감방을 상상할 수 있다. 철창을 잠시 치운다면 감방은 단박에 세트가 된다. 교도소 안에서의 수감자와 감시자의 관계는 영화를 촬영하는 상황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감방/세트 안에서 배우는 연기를 하고, 철창 너머에서는 감방/세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통제하기 위해 가만히 지켜본다. 내러티브 영화에서 이러한 시선들은 최대한 매끄럽게 다듬어져서 텍스트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도록 통제되고 봉합되어 있는 시선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지배적인 질서 속에서는 감추어져야 했던 다른 논리를 마주하게 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숨>에도 감추어진 논리를 드러내는 시선(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연과 정이 불륜 사실로 실랑이를 벌이는 시퀀스를 보자.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연의 뒷모습을 향해 핸드헬드 카메라가 다가간다. 조금 뒤, 화면의 왼쪽에서 정이 걸어 들어가고, 카메라는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즉 정의 시점숏처럼 시작한 이 숏은 시점의 담지자인 정을 화면 속으로 들여보냄으로써 연과 정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공간에 서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과 정이 머리핀을 가지고 다툼을 벌이기 시작하면, 갑자기 카메라는 창문 바깥으로 빠져나가 실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본다. 공간 안에 있던 ‘타인의 시선’은 공간 바깥에도 있는 것,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스크린 바깥에도 있는 ‘관객의 시선’과 조응하는 듯 하다.

연과 사형수 장진이 면회실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에 또 다른 시선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퀀스의 앞부분은 연과 장진의 시선 교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 갑자기 카메라는 오버숄더 숏으로 연과 장진을 번갈아 비춰준다. 면회소 공간 안에도 연과 장진, 그리고 교도관 외에 다른 시선을 보내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 때, 장면은 감시카메라에 잡힌 면회실 모습으로 옮겨간다. 이 숏은 감시카메라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감시카메라 영상이 방송되는 모니터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감시카메라 영상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흐릿한 모습이 모니터에 반사되어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 면회실 안에서 오버숄더 숏으로 연과 장진을 바라보던 시선과 감시카메라를 보고 있는 보안과장의 시선이 완전히 분리된다.

보안과장의 시선은 대한민국 형법상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면회를 성사시킬 만큼 대단한 권력을 보여준다. 연은 이 시선의 승인에 힘입어 교도소 안으로 입성하고, 벽에 총천연 풍경 벽지를 바르고,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른다. 동시에 이 시선은 연과 장진이 자신의 욕망으로 나아가는 것을 언제든 즉각 중단시킬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보안과장은 두 대의 감시카메라에 포착된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는 ‘편집’을 수행하기까지 한다. 이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는 명백해졌다. 그것은 영화의 진행과 멈춤을 통제하는 자, 영화의 구조를 결정하는 예술가적 자의식을 갖춘 자, 즉 영화감독의 것이다.

감옥이라는 세팅과 영화감독의 판옵티콘적 시선은 즉각적으로 초기영화 제작환경을 동시대 미디어 풍경 속에서 떠올리게 한다. 감옥에서의 수감자와 감시자의 시선교환이 촬영현장에서 장면을 지켜보며 통제하는 감독의 시선으로 반복되듯이, 영화관 안에서는 감독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으로 변주된다. 객석에서 관객들은 어두운 영화관에서 단 하나 명백하게 가시적인 것, 즉 스크린을 바라보고, 영화는 처음부터 이 시선을 의식하면서 제작된다. 동시대의 가장 활동적이면서도 가장 문제적인 미디어 풍경 하나, 사람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을 단다. 이들의 넘쳐나는 의견은 때로는 TV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을 초기 기획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 실질적으로 영화를 통제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왕성한 활동은 영화적인 장면 그 자체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감독 못지않게 관객 역시 자신의 시선을 통해 영화를 통제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숨>은 ‘보안과장’이라고 불리는 김기덕 감독의 시선과 (관객의 것 같기는 하지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여러 시선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한 편의 영화를 둘러싼 여러 욕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보안과장이 감시모니터를 꺼버리고 그 위로 김기덕 감독 자신의 얼굴을 비춰줄 때 보안과장의 시선이 여타의 시선에 대한 우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마치 이 영화가 그 누구도 아닌 김기덕 감독 자신만의 것이라고 항변하는 듯 하다.

그 순간 관객의 시선과 조응하는 것처럼 보였던 ‘다른’ 불길한 시선들의 정체가 명확해진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이라기보다는 관객의 자리를 미리 선점하는 것이다. 예상되는 관객의 반응들을 선점하는 대사들과 불길한 시선을 관객보다 먼저 보내는 장면들은 이 영화 바깥에서 어떤 다른 시선을 보내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나마 앞부분에서 등장했던 불길한 시선들은 감옥 안으로 들어오면, 다시 말해 영화라는 미디어를 누가 통제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들어오면 완전히 소거되어 감독의 시선만이 남게 된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사랑과 용서를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관객과 그 호흡을 공유하기는 거부하고 있는 듯 하다. 굳이 ‘다른’ 시선을 등장시킨 다음 그것들을 노골적으로 끊어버리는 <숨>에는 이 영화를 보는 어떤 누구도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관객들과의 소통 가능성을 타진조차 하지 않는다. 감독은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여 그것을 정면돌파 하려는 의지를 갖추고 있는지, 과연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온전히 관객의 수준에만 달려있는 것인지 — 이 영화를 본 뒤에 품게 된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