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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춤추는 대수사선(踊る大搜査線)》 스핀오프 시리즈의 변화들

by 뮤이

'총격전도, 카 체이스도, 죽는 사람도 없는 형사드라마'라는 <춤추는 대수사선(이하 <오도루>)>의 최초 컨셉은 드라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배반된다. 2부작 연속으로 특별 편성된 이 에피소드에서, 마시타{철없고 겁 많은 도련님 형사. 후에 캐리어(고급관료)가 된다}는 총상을 입어 길바닥을 피로 적시고 드디어 주인공 아오시마{컴퓨터 판매 실적 넘버원의 영업맨 출신 형사. 내가 보기에 그는, '6,70년대의 투쟁 실패 이후 사회적 체념과 무력감 속에서 등장한, ‘캡틴 테일러’ 식의 신념은 있으되 능력과 실천에 있어서는 미묘한, 새로운 영웅이다.}와 범인 간의 총격전 및 카체이스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후 잠시 특별판을 통해 본래의 모토를 회복한 듯 보였던 <오도루> 월드는 극장판 1·2편과 세 편의 스핀오프 시리즈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이 ‘배반’의 규모를 스펙터클하게 확대해 간다. 그러나 테마 혹은 세계관의 문제는 관행적으로 지속되었다. 그것은 관료주의적 경찰 조직(드라마 속에서 ‘본사/지사’로 대체하여 불림으로써, 특히 버블 붕괴 이후 첨예화된 일본 경제체제의 부조리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시스템’으로도 확장된다)을 향해 ‘사건은 현장(일본 사회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로서 완간서, 이후의 오다이바{도쿄만 주변의 해안가 ‘완간’은 드라마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공터밖에 없는 황량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후 바다를 매립하고 유원지 및 쇼핑몰, 방송국을 적극 유치하여 도쿄 최대의 관광지 ‘오다이바’로 개발된다. 오다이바의 입구에 극장판에도 등장하는 ‘레인보우브릿지’가 있다.})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일갈하는 문제제기와 개혁의 요구, 그리고 방법론으로서 정당한 기성세대로 제시되는 와쿠상의 ‘바른 일을 하고 싶으면 높은 사람이 되라’는 전언에 대한 수정주의적 채택이었다. 다시 말해 아오시마는 ‘현장’에서 ‘신념’을 지키고 현장 형사의 ‘자유로운’ 수사가 보장되도록 캐리어 무로이{설정에 따르면 캐리어는 대부분 도쿄대 출신이다. 무로이는 지방 대학 출신으로 ‘위’에서도 마이너한 포지션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반면 이 때문에 조직이 아닌 현장의 ‘동료’로서 인식된다.}가 ‘위’에서 노력하겠다는 ‘(일견 야오이적으로 독해되기도 하는)약속’이 있었다. 이것은 극장판 1·2편에서 한 번의 좌절과 성취를 통해 여전히 강조된다.


첫 번째 극장판에서 주인공 아오시마와 무로이, 와쿠상은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시스템에 대한 최소한의 균열도 내지 못한 채 일상에 익숙해 져 있었고, 오히려 드라마 시리즈부터 남성 중심의 경찰 조직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스미레가 사표를 내려다 그만 둔다. 그러나 영화 중반부에 기성세대인 와쿠상/부총감의 실패한 꿈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반복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무로이의 방문을 거절하며 일갈하는 아오시마의 대사를 통해 그 꿈의 현재적 진행 노력에 무게가 실린다. 어쨌든 이때까지 이들의 세계관은 정당성에 있어서도 방법론에 있어서도 전혀 의심되지 않았다.

두 번째 극장판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이하 <레인보우>)>에 이르러 이들의 노력은 한 번의 결실을 맛본다. 버블 붕괴 이후 글로벌 체제 개편에 의해 정리 해고되어 ‘패배자’로 낙인찍히면서 시스템에 의심을 품고 저항하는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훌륭한 상사(무로이)’에 대해 설교하는 아오시마는 여전히 조직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고, 그 근거로 그야말로 현장도 ‘위’도 부서간의 경계도 무화되는 일종의 카니발로서의 ‘레인보우 브릿지 봉쇄’는 국가 기능마저 마비시키는 아나키스틱한 순간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완벽하게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진 동성사회의 내부에서 실현된 것이라는 데 있었다. 이 순간, 시리즈를 통해 조직에 대해 가장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왔던 스미레는 총상을 입어 병원에 유폐되어 있었고, 최초 보호받는 대상으로부터 점차 자신의 포지션과 주체성을 획득해 가고 있던 유키노 역시 범인들에 의해 감금당해 히어로에 의한 ‘구출’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관료주의 혹은 부조리한 시스템의 화신으로서 아오시마들의 ‘꿈’을 방해하기 위해 새로 등장한 오키다 관리관은 스스로의 무능력과 과장된 신경증을 드러내며 히어로들의 ‘완간서(현장)’으로부터 추방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오히려 반정부 테러리스트가 되어 조직을 바보로 만들어버렸던 통쾌함이 마지막에 이르러 도착적 방식으로 봉합되어 버렸고, 어쨌거나 그리하여 해피엔딩. 무로이는 표창을 받고, 유키노와 마시타는 ‘아이 만들기’에 한 걸음 가까워지며, 엔딩 타이틀의 스틸 사진 속에서 와쿠상은 가부장으로서의 목표, 즉 ‘못생긴’ 딸을 결혼 ‘시키는’ 데 성공하고 스미레와 (뒷모습의) 아오시마는 캐비어를 먹으러 간다.

그로부터 3년 후, 일거에 세편에나 제작된 <오도루>의 스핀오프 시리즈 <교섭인 마시타 마사요시>·<용의자 무로이 신지>·<도망자 키지마 조이치로>(이것은 제작·공개 순이다. 디제시스 내부의 시간 순으로는 <도망자 키지마 조이치로>·<교섭인 마시타 마사요시>·<용의자 무로이 신지>의 순서이다)는 그간의 세계관으로부터 점점 빗나가며 균열의 지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실 <레인보우>에서부터도 살짝 드러나지만, 시리즈의 무대 완간은 대관광지 오다이바 개장 이후 이전의 로컬적 가능성으로부터 도심의 심장부로 전환되어 시스템에 대한 더욱 직접적인 문제들(특히 테러)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여건 상, 와쿠상을 연기했던 이가리야 쵸스케가 유명을 달리하고 주인공 아오시마 역의 오다 유지가 이미지 고착화를 이유로 속편 출연에 미온적 자세를 보임으로써, 본래의 캐릭터로만으로는 내러티브 구성이 불가능해졌고 변화가 불가피했다. 다시 말해 본래의 목표와 이를 뒷받침하던 조건들이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스핀오프 시리즈에서는 마시타와 무로이를 중심으로 한 캐리어와 ‘회의실’ 쪽으로 내러티브의 중심을 이동시키고 새로운 현장(테러대책반인 SIT와 신주쿠서)을 내세운다.

일단, 가장 먼저 제작·공개된 <교섭인 마시타 마사요시(이하 <교섭인>)>의 오프닝은 3년 전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한 그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마시타의 인터뷰로 대변되는 ‘그들’의 카니발에 의심과 반감을 품는 범인의 시선이 그것이다. 범인은 경찰 조직의 대표로서 마시타를 지목해 게임을 벌이면서, 그들의(여기에는 TTR, 즉 도심지하철관리본부라는 새로운 조직이 포함된다) 무능력과 뻔뻔함을 조롱한다. 3년 전의 성취를 바탕으로 ‘위’에서 더욱 노력한 무로이의 제안으로 조직된 ‘교섭과(이 부분은, <오도루> 월드의 갖은 패러디와 더불어 일본 영화·드라마의 헐리우드 번역으로서 흥미로운 지점이 되기도 한다.)’의 총책 마시타는, 네고시에이터로 활약하여 우여곡절 끝에 겨우 범인과의 게임에서 승리하고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결말의 해피엔딩이 유키노와의 약속을 지키고 청혼에 성공하는 마시타의 개인적 차원으로 집중되면서 형사물로서 가장 중요한 범인 체포에는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시타들은 범인이 누구인지조차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범인들로부터 사회적 위협의 요소를 제거하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더욱 궁금해진 범인의 성격에 주목하건대, 그는 ‘전차 오타쿠’이다. 그는 개인적 실체를 가지지 못한 오히려 집단적 존재이다. 여기서 재작년 소설 발표 이래 일본에서 일대 붐을 일으키며 단번에 사회현상으로까지 대두되었던 ‘전차남(원래 전차남은 아니메 오타쿠이다)’이 상기된다. 특히 같은 회사(후지TV)에서 연달아 제작한 <교섭인>과 드라마 <전차남>을 비교하면 일본의 기성(보수) 입장에서 주변부적 타자였던 오타쿠를 바라보는 양가적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데, 사실 <오도루>는 시리즈 전반에 걸쳐 오타쿠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었다. 예컨대 드라마에서 스미레를 위협하던 아니메 오타쿠나 첫 번째 극장판의 범인들, 그리고 <교섭인>의 범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전처럼 오타쿠를 반사회적 ‘변태’로서 주류사회 밖으로 완전히 게토화하기에 ‘전차남’의 붐이 너무 컸고 대중의 시각도 많이 변해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략은 수정된다. 오타쿠들과의 게임에서 승리하여 조직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이를 통해 그들을 시스템 내부로 동원하자는 것이다(마치 '60년대 <팔도 사나이> 시리즈의 국가 동원 기제를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그러나 <교섭인>에서 오타쿠의 패배는 주류 사회 진입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으며, 지워진 혹은 잊혀진 전쟁시기의 환기(범인이 최첨단 설비 전차 ‘쿠모’를 숨기는 곳은 역설적으로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방공호’와 폐허이다. 범인은 흔적을 지우고 차단한 시스템에 대해 조롱한다)로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문제제기 역시 유효한 채로 남는다. 그들은 체포되지 않았고 여전히 ‘미지’이다. <교섭인>에 이르러서는, <레인보우>에서와 같은 도착적·봉합적 성취에도 관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포섭하지 못하는 잉여가 드러나는 것이다.

두 번째 스핀오프 <용의자 무로이 신지(이하 <용의자>)>에 와서 확실히 밝혀지는 범인, 정확히 사건의 원흉은 ‘소녀’이다. 사실 소녀, 용어상으로 ‘소년 범죄’는 최근 일본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다수의 미디어에서 다루어져왔다. 그러나 그간 적지 않게 등장했던 반체제적 저항(그것이 적극적이든 피학적이든)으로 가득한 ‘아이들’에 비해 <용의자>의 소녀는 오히려 단순한 팜므파탈에 가깝다. 그녀가 자신의 외모를 통해 철없는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사이, 그녀를 사이에 둔 남성들 간의 치정극이 벌어지고 때문에 현장 형사들이 대혼란에 빠지게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로이는 린치를 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영화의 제목이자 가장 큰 ‘사건’인 무로이가 ‘용의자’가 되는 것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 무로이가 ‘용의자’가 된 까닭은 ‘경찰조직의 정점’인 장관 자리를 두고 벌이는 경찰청과 경시청{쉽게 비유하자면, 경찰청(NPA, National Police Agency)과 경시청(MPD, Metropolitan Police Department)은 FBI와 NYPD에 대당한다고 할 수 있다. 경찰청은 국가기관이고 경시청은 지역기관이지만 남한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국가 기능이 수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경시청의 영향력이 경찰청에 비등하게 된 것이다. <오도루> 시리즈에서 이 두 기관은 현장에 대비되는 ‘관료’로서 동일하게 다루어져왔기 때문에, 이 글도 굳이 경찰청과 경시청을 비교하여 국가 대 지역의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기로 한다.}의 알력 다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바, 경찰이 연루된 ‘죽음(살인과 사고)’의 책임과 윤리적 비난을 경찰청과 경시청 양 쪽에서 동일한 정도의 출혈로 봉합시키는 계산 문제에서, 경찰청 출신으로 경시청에 파견되어 있는 무로이는 적절한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반복컨대, ‘바른 일을 하고 싶으면 높은 사람이 되라’는 와쿠상의 전언을 현장의 아오시마와 캐리어 무로이가 분할하여 성취하는 것은 <오도루> 시리즈의 일관된 방법론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용의자>에 이르러 최초로 의심·부정된다. ‘높은 사람(경찰조직의 정점)’이 되기 위해 혹은 이미 ‘높은 사람’이 사건을 해결 방식은, 한편에서는 ‘범인’을 비롯하여 시리즈에서 시종일관 배격해왔던 오타쿠(<용의자>의 오타쿠는 변호사로서 예전처럼 하위계급의 잠재적 범죄자로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는 <오도루> 시리즈 처음으로 사회적 발언권과 권력을 부여받은 오타쿠지만 오히려 천박한 자본가의 면모를 보이며 부정적으로 제시되고, 현실 사회의 인식 변화와 상관없이 시리즈가 오타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반감을 재확인시킬 뿐이다)와 결탁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위 권력에의 의탁하는 것이었다. 결국 ‘높은 사람’ 자체가 일종의 신화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무로이는 조직에 사표를 제출함과 동시에 신주쿠 현장을 찾아가 와쿠상 및 아오시마와의 ‘약속’ 파기를 선언하며 그 이유로 ‘경찰인 한 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 일갈한다. 그 순간 조직은 해체되어 ‘법정’으로 재구성된다. 이 공간은 ‘법’이라는 상위 규범에 의해 강화된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임시적 ‘마당’으로서 기능한다는 면에서 <레인보우>에서의 완간서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완간서와 달리 이곳은 이전까지 남성(경찰)들에 의해 대상화되거나 배격된 바 있던 여성들을 등장시켜 조직(남성들)이 보여 왔던 폭력적이고 친권력적인 방식에 대별되는 정당하고 자기 치유적인 방식을 통해 무로이와 연대시킨다는 데 있어서 매우 전향적이다. 나아가 무로이는 ‘법적’ 승리의 순간에 ‘됐다’며 ‘법정’으로서 공간의 의미를 거부하고 무화시킨다. 그는 조직 내부에서 나름의 ‘높은 사람’이 됨으로써 애초의 의도와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강압하게 된 것을 사과할 뿐만 아니라 엔딩 장면에서는 경찰이 오바하라의 여성성에 대해 선정적으로 접근한 것마저 사과한다. 요컨대 <용의자>에 이르러 <오도루> 시리즈는 그간의 착오와 과오에 대한 반성, 즉 ‘높은 사람’이 되더라도 권력의 자연스러운 속성 상 ‘바른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레인보우>에서처럼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남성들 간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한 정당할 수 없다는 인식을 통해 유례없는 전복성을 획득하게 된다. 결국 다시 무로이를 (지역의 현장이기는 하지만) 조직에 잔류시킴으로써 타협의 지점에 머물고 만 것이 아쉽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스핀오프 시리즈의 마지막 주인공 <도망자 키지마 조이치로(이하 <도망자>)>가 등장한다. 그는 마시타나 무로이와 달리 현장 형사이며 원래의 완간서 멤버도 아니다. 그런 키지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를 통해 <용의자> 이후의 새로운 방법론이  제시된다는 면에서, <도망자>는 원래의 드라마 시리즈와 비교할 수 있다. 일단 <도망자>에 이르러 조직이 일변했다. 최초의 TV 시리즈에서 조직과 관료들은 무능하고 비합리적이긴 했지만 비윤리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불평은 해도 결국 와쿠상의 우회적 개혁이 통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망자>에 이르러 조직은 이른바 ‘N시스템(가두 감시 카메라 네트워크. <레인보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으로 드러나듯 치밀한 빅브라더로 제시되는 한편 (정확히 알 수 없는 ‘실리’를 위해 범죄까지 포함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음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에 있어서 치명적 결함을 드러낸다. 와쿠상의 전언은 폐기되지 않을 수 없고, 이에 키지마는 ‘뒤의 뒤를 노린다’라는 새로운 모토를 외친다. 말장난 같지만 극중에서도 언급되는 바, ‘뒤의 뒤’는 곧 ‘앞’이며, ‘바른 일을 하고 싶으면’ 모순을 향해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으로서 키지마는 조직과 대치하면서 정면 돌파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데, 과장하자면 이 장면으로부터 <오도루> 시리즈의 새로운 ‘월드’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장소(경시청 계단)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엔딩 장면의 미묘한 대조, 즉 계단을 내려오는 아오야마와 망설이는 무로이를 부감으로 비추던 드라마에 비해 <도망자>에서 주저 없이 당당하게 계단을 오르는 키지마를 정면으로 잡은 것은 결정적 반전이다. 그러나 세계관이 바뀌어도 <오도루> 월드의 좋지 않은 습관은 여전한 것이 중요한 순간은 남성 동성 사회 내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도망자>에서는 다시금 여성을 모성이자 보호 대상으로 치환하여 사건의 외부에 배제시키고 새로운 방법론이라고 하는 것도 노인부터 소년에 이르는 남성 3대의 유대 속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그리고 있어, 이 작품이 <용의자>의 반성 직후에 나왔음을 생각할 때 매우 실망스럽다. 게다가 <용의자>의 전회를 발전시키고는 있을지라도 내러티브 상 <교섭인>과의 연결을 위해 조직 해체로까지 발전되지 못한 채 비판의 과정만을 순환하게 되는 한계도 아쉽다.

같은 장소(경시청 계단)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엔딩 장면의 미묘한 대조, 즉 계단을 내려오는 아오야마와 망설이는 무로이를 부감으로 비추던 드라마에 비해 <도망자>에서 주저 없이 당당하게 계단을 오르는 키지마를 정면으로 잡은 것은 결정적 반전이다.


최초로 TV 시리즈가 방영되었던 것이 1997년 1월이었다. 10년 동안 <오도루> 월드는 신선한 시도로 인기를 얻는 동시에 세계관의 한계를 스스로 인식·반성하며 타개점을 모색해 왔다. 10년 전과 비교하여 가장 최근의 면모는 ‘총격전도 카 체이스도 죽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는 면에서 특유의 재미를 잃고 오히려 평범한 형사 드라마가 되어버린 듯도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기존의 답답한 세계관을 지지 가능한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시킨 면도 있다(그렇다고는 하지만 와쿠상 역의 이가리야 쵸스케 사망 이후 연이어 제작된 스핀오프 시리즈에서 보란 듯이 그의 전언이 폐기된 것은 확실히 유감스럽다). 보수적 성향으로 유명한 방송국에서 제작한 작품으로서 사실 <오도루> 시리즈가 지금과 같은 세계관의 전회를 지속시켜 완전한 전복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 싶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시리즈의 실질적 주인공인 아오시마가 무로이의 ‘약속’ 파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매우 궁금하다. 만담 콤비 스미레와 아오시마의 관계에 진전이 있을지 그렇다면 무로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동인의 관점에서도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유명한 주제곡 ‘rhythm and police’를 배경으로 시스템 구석구석 들이대는 <오도루> 특유의 활력 넘치는 스테디캠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대환영이다. 완간서뿐만 아니라 교섭과 신주쿠 북서, SIT 등 그러고 보니 <오도루> 월드는 무한 확장이다. 겁이 날 정도로, 그야말로 <오도루>는 대중 드라마의 귀감인 것이다.